미로에 갇혔다면 '다이달로스의 지혜'를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2-07-05 17:31   수정 2022-07-06 00:09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두 번이나 놀랐다. 중세 고딕 성당 중 가장 화려하다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먼저 압도됐다. 이 지역 특유의 파란색 안료 덕분에 ‘샤르트르 블루’라고 불리는 ‘천상의 빛’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이 아름다운 창을 보러 파리에서 85㎞ 떨어진 소도시로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렸다.

더 놀라운 것은 본당 바닥에 그려진 지름 13m의 원형 미로(迷路)였다. 12개의 동심원을 기준으로 꼬불꼬불 이어진 261m의 선을 따라가니 중앙에 도달했다. 중세 사람들은 이 미로를 무릎걸음으로 따라가는 것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지금도 겸허와 속죄, 묵상의 길을 따라 제대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이가 많다.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에 성공
이 길은 길고 복잡하지만 궁극에는 중심에 이른다.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여러 갈래로 길을 잃게 만드는 미로(maze·메이즈)가 아니라 하나의 길을 길고 복잡하게 만든 미궁(迷宮·labyrinth·라비린스)이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 미로와 미궁을 섞어 쓴 이후 두 개념이 혼용돼 왔다. 15세기 베네치아 의사 조반니 폰타나가 여러 갈래의 ‘미로도’를 그려놓고 제목을 ‘미궁’이라고 붙인 뒤로는 더 그랬다.

미궁의 영어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비린토스(labyrinthos)’다. 이는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가 달린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명장(名匠) 다이달로스가 크레타 섬에 만든 폐쇄공간.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그 속에 있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의 젊은 남녀들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 그러다 아테네의 용사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살아서 미궁을 빠져나오면 더 이상 인신공물을 요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테세우스에게는 괴물을 죽이는 것보다 미궁을 무사히 빠져나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이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나섰다.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미궁 설계자 다이달로스에게 해법을 구했다. 다이달로스는 미궁 안에서 빠져나올 길잡이로 실 한 타래를 건네줬다. 이 덕분에 테세우스는 실을 조금씩 풀며 깊은 곳까지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되감으며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유럽의 왕과 귀족들은 이 신화를 정원 꾸미기에 활용했다. 조경의 예술성에 유희 기능까지 접목한 설계였다. 영국 런던 햄프턴 코트 궁전 정원의 미로에서는 공간 지각력이 뛰어난 사람마저 한참씩 헤매곤 한다.

우리 몸에도 ‘미로’가 있다. 귓속의 내이(內耳, 속귀)와 벌집뼈(篩骨)의 이름이 ‘라비린스’다.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염증이 생기면 평형감각과 청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명이 들리거나 어지럼증을 겪는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 따르면 “인간이야말로 수많은 미로를 겹쳐놓은 존재”다. 그의 표현대로 인체의 밑부분에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내장, 꼭대기에는 끝없이 회전하는 대뇌가 있다. 그사이에 가늘고 긴 혈관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다.

인간의 삶은 미완이어서 선택도 늘 불완전하다. 미로나 미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인 탈출법은 한쪽 손을 벽에 붙이고 계속 걷는 것이다. 미로도 결국 하나의 면이기에 전 구간을 훑으면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좌수법(左手法)·우수법(右手法)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출구의 한 점(點)을 찾기 위해 면(面)을 이용하는 해법이다.

이와 달리 다이달로스가 제공한 실타래는 선(線)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칼로 끊어버린 알렉산드로스처럼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이런 방식은 놀랍긴 하지만 일차적이고 평면적이다.

또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2차원 평면을 뛰어넘어 3차원 입체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해법도 다이달로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제공한 게 들통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갇혔다가 공중탈출법을 생각해냈다. 마침내 큰 새의 날개와 밀랍을 이용해 아들과 함께 섬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정교한 솜씨도 뛰어났지만 ‘새의 시각(bird’s eye)’을 원용한 발상이 탁월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하늘로 솟구쳐 탈출하는 이 얘기는 일상 속에 얽매여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기업이나 국가를 경영하는 일도 그렇다. 규모가 크고 복잡할수록 원리는 더 명료해진다.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입체로
‘새의 시각’은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 개념의 창시자인 마이클 해머가 강조한 관점이다. 그는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뛸 준비가 돼 있을 때 ‘새의 눈’이 필요하다”며 “세상을 넓게 내려다보면서 회사가 진정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걸 이루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벌레의 시각(worm’s eye)’을 자주 권했다. 그는 “벌레는 땅을 기면서 장애물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길이 막히면 금방 에둘러가며 출구를 찾을 줄 안다”며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도 이런 시각으로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사실은 두 가지 시각을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쓰는 게 현명하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큰 그림에는 ‘새의 시각’,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탄력적으로 헤쳐 나가는 데에는 ‘벌레의 시각’이 유리하다. 혹여 미궁에 빠졌다 해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미궁의 외길은 늘 중심을 향해 있고, 그 길을 되돌아오면 곧 출구에 닿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시장을 선도할 신기술도 없이 남의 흉내만 내다가는 언제든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한때 잘나간다고 우쭐해서도 안 된다. 하늘을 날게 된 아들 이카로스는 “너무 높이 날면 밀랍이 녹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계속 올라갔다가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미로 그림이 겸허와 묵상의 시간을 가르쳐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성당은 길고 긴 순례자 길의 길목에 있다. 스페인 땅끝까지 이어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곳에서 1625㎞를 더 걸어야 한다. 이 길 또한 가는 길과 오는 길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미로가 그려진 성당이 없을까. 양평에 있는 모새골공동체교회의 묵상동산에 원형 미로가 조성돼 있다. 국내 최초의 한옥 성당인 강화성당 마당에서도 미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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